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스크바 대공국 (문단 편집) == 역사 == 원래 [[모스크바]]는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일부분이었으며 러시아 내에서도 그다지 비중없는 도시 중의 하나였다. 그러다 [[몽골 제국]]의 [[키예프 루스]] 침략[*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 칸]]이 주도했다. 그에게 침략 명령을 내린 건 삼촌이자 칭기즈칸의 아들인 [[오고타이 칸]]. ]과 붕괴 이후 많은 루스인 난민들이 오카 강과 [[볼가 강]] 사이의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몽골 침략자들은 너무 먼 곳에서 와서 숫자가 적다보니 세세한 구석구석까지 직접 통치하긴 무리였고, 고향과 환경이 비슷하고 [[유목]]하기 좋은 우크라이나-남러시아 평원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모스크바 같이 숲이 우거진 이런 오지들은 우크라이나 평야지대보다는 몽골-타타르인들로부터 훨씬 안전했다. 1263년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지배자이자 블라디미르 대공[* 당시 러시아 제후들 중에서도 최고란 의미를 지녔던 작위이다.]이었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야로슬라프 3세가 그 뒤를 잇게 되면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의 아들이자 두 살에 불과했던 다닐 1세에게 가장 가치없는 모스크바의 땅을 수여하면서 내쫓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당시 키예프-루스 계열에서도 왕가로 불리던 류리크 왕조의 인물이 모스크바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모스크바 공국이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신생 모스크바 공국은 도시 주민의 비중은 매우 낮았던 반면 농촌 인구는 난민 인구 증가에 힘입어 빠르게 증가했다. 이 지역은 인구가 매우 적어서 공후들이 난민들을 초청하여 자신들의 영토에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잉여 생산물을 킵차크 칸국에 다 갖다바치는 형편이 되면서 키예프 공국 시절과 다르게 상업은 거의 비중이 없었으며 자급자족적인 경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